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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도나, 그 독초를 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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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584회 작성일 23-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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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신찬영의 마음의 독 마음의 약 - 벨라도나와 아트로핀

‘호흡곤란 물질’ 콩에서…‘벨라도나’는 눈 커지게
아트로핀은 해독작용…독초도 활용하기 나름

굳이 힘들여 생각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작동하는 자율신경계는 우리 몸의 각종 장기와 내분비·외분비선이 외부 환경에 따라 적절히 작동하게 조절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자율신경계는 생명 유지에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담당하며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로 나뉜다. 교감신경계는 위기 상황에서 아드레날린(에피네프린)에 의해 활성화되어 적과 싸우거나 도망가야 할 때 그 기능을 발휘한다. 부교감신경은 평화 시, 정상적 신체 활동이 필요할 때 활성화된다. 심장박동을 줄이고 혈압을 떨어뜨리며 소화액을 분비해 소화를 촉진하고 화장실도 다녀오게 하면서 에너지를 비축한다. 부교감신경 활성 조절은 아세틸콜린이 담당한다. 자율신경계는 자동으로 작동할 뿐만 아니라 의식적인 노력으로 활성을 바꾸기도 어렵다. 감정 상태에 따라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심장박동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자율신경계는 무척추동물에서부터 시작해 척추동물과 포유류로 올라오면서 오랫동안 정교하게 진화됐다.

‘시련 재판’에 사용된 콩 추출물

동물과 식물은 상호 작용하며 진화한다. 수많은 식물이 동물의 자율신경계를 조절할 수 있는 물질을 생산했고 사람은 이런 식물에서 추출한 물질을 의약품과 미용 목적으로 활용했다.

아세틸콜린은 부교감신경의 기능을 활성화할 뿐만 아니라 인지 기능, 기억을 포함한 중추신경계 고위 기능, 근육의 수축 등 다양한 신경 기능을 조절한다. 아세틸콜린은 우리 몸에서 합성돼 무스카린성 수용체와 니코틴성 수용체라는 두 종류의 단백질에 결합해 그 작용을 나타낸다. 이 두 수용체는 식물에서 분리한 아세틸콜린 흉내 물질을 따라 그 이름이 지어졌다.

니코틴은 우리가 아는 그 니코틴이다. 담배의 니코틴은 식물이 아세틸콜린의 작용을 흉내 내기 위해 진화시킨 물질이다. 밥 먹고 소화 잘되라고 담배 피운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약리적으로 부교감신경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근거가 있는 말이다. 물론 고농도 니코틴은 중추신경계와 심장, 혈관 등에 작용해 치명적인 독 작용을 나타낸다. 2021년 5월 30대 여성이 니코틴 원액을 이용해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법정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무스카린은 광대버섯류의 독버섯에서 분리된 물질이다. 저농도에서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 침, 땀, 눈물 등 각종 분비가 증가하지만 버섯 몇개만 먹어도 환각, 호흡 마비 등을 통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남미 원산인 ‘필로카르푸스 야보란디’라는 식물에서 분리된 필로카르핀이라는 물질은 특정 무스카린 수용체를 자극해 구강 건조증이나 녹내장 치료에 활용되기도 한다.

칼라바르콩에 들어 있는 피소스티그민이라는 물질은 아세틸콜린을 분해하는 효소를 억제한다. 몸속에 아세틸콜린이 많아진 것과 같은 효과를 이끌어 심하면 호흡 마비로 사망할 수도 있다. 일본 지하철 옴진리교 테러에 사용된 사린과 같은 신경가스가 비슷한 원리로 작용한다. 이런 독성 때문에 칼라바르콩은 시련을 주고 무사하다면 죄가 없었다고 판단하는 ‘시련 재판’에 사용되기도 했다.

약으로 쓰거나 독으로 쓰거나

벨라도나라는 가지과의 식물은 수천년간 인류가 사용했고 항콜린(항부교감) 작용을 지녀 각종 분비와 소화관 운동을 저해한다. 고농도에서는 환각·섬망 등의 중추신경계 작용을 나타낸다. 독일 과학자들이 벨라도나에서 1831년 활성 성분을 분리하고 1901년 합성에 성공했는데 이 물질이 유명한 아트로핀이다. 항콜린 물질은 다투라속의 ‘악마의 트럼펫’, 브루그만시아속의 ‘천사의 트럼펫’ 등 다양한 가지과 식물들에서 많이 발견된다.

병역의 의무를 마친 사람은 아트로핀 제독 키트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무스카린성·니코틴성 물질 혹은 아세틸콜린의 작용을 강화시키는 신경작용제가 호흡마비 등으로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는데, 아트로핀은 이에 대항해 해독제로 작용하거나 해독에 필요한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숀 코너리, 니컬러스 케이지 주연의 ‘더 록’(1996)이라는 영화에서 신경가스가 터지자 주인공이 큰 주사기를 꺼내 심장에 아트로핀을 직접 주사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벨라도나의 속명 아트로파는 그리스어로 아트로포스, 즉 운명의 세 여신 중 마지막 죽음을 결정하는 여신에서 이름을 따왔다. 종명 벨라도나는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가지과의 여러 꽃이 얼마나 예쁜지 한번 감상해보시기 바란다. 방울꽃이나 트럼펫꽃같이 생긴 예쁜 꽃들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광대버섯의 화려한 빨간색은 먹어보라고 마치 유혹을 하는 듯하다. 부교감신경이 차단되거나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눈동자가 커진다. 벨라도나는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 유럽의 여성들이 눈동자를 크게 해(일본 만화의 아톰이나 요술공주의 눈동자를 상상해 보면 될 듯하다) 자신의 매력을 뽐내는 데 종종 사용했다고 한다.

지나친 아름다움의 추구는 죽음을 재촉할 수 있다. 마음의 약은 마음의 독이 될 수 있다. 오랫동안 동물의 증식을 위해 공진화가 진행된 식물이 만들어내는 물질들로부터 우리는 신경의 기능과 조절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얻게 됐다. 이런 물질은 위장관 장애, 녹내장, 천식, 근육 마비, 진정, 진통, 알츠하이머병을 포함한 다양한 질환의 치료제로 개발됐다. 한편으로는 암살과 고문, 전쟁용 대량살상 신경무기로도 악용됐다. 자율신경계 조절 물질을 보면서 과학적 정보뿐만 아니라 중용, 지나친 욕심의 자제 등 인생에서 중요한 원칙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신찬영 교수

https://blog.naver.com/neuroventi2015/22317380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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