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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공포·공황…약물치료 ‘만만찮은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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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421회 작성일 2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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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신찬영의 마음의 독 마음의 약
항불안


핏빛 구름으로 물든 피오르에서 자연과 색채가 질러대는 비명을 들으며 에드바르 뭉크는 <절규>를 그렸다. 이를 전후해 발표한 <불안>과 <칼 요한 거리의 저녁>은 불안과 공포를 주제로 한 뭉크의 독창적 스타일을 보여주는 대표작들이다. 특히 <절규>는 2019년 <시엔엔>(CNN)이 발표한, 검색순위 상위 10선에 오른 근대 미술품으로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을 충실히 나타낸 그림이다. 경쟁이 격화돼 실존과 생존 자체가 불확실한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는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불안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 편안하지 않은 상태이고 공포는 두려움이 현실화된 상황을 말한다. 깜깜한 동굴 안을 혼자 걸어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겪는 불편함이 불안이고, 실제 들어갔더니 갑자기 박쥐가 푸드덕 날아들어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갈 때 겪는 신체적·정신적 두려움이 공포다. 불안과 공포는 선천적으로 각인돼 있거나 학습을 통해 새로 얻게 된다. 부정적인 이미지이긴 하지만 생존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감정이기도 하다. 겁 없는 원숭이는 사자나 표범에게 잡아먹히거나 나무에서 떨어져 뼈가 부러질 수 있다. 공포는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인 감정인 셈이다. 그러나 자극이 너무 많아진 사회관계 속에서 인간이 고도로 발달된 인지능력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해 과도한 불안을 느끼게 되면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벤조다이아제핀 처방 기본…졸음 유발하고 기억 방해


미국에선 28%에 가까운 사람이 불안장애를 살면서 한번은 경험하며, 우리나라의 불안장애 유병률은 5% 안팎이다. 우울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흔해 우선적으로 우울증 치료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원인과 증상에 따라 다양하게 대처해야 한다. 불안장애는 △특정한 사고나 폭력 등에 의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가스불을 껐는지, 지갑을 제대로 뒀는지, 손은 씻었는지 계속 확인해야 하는 강박장애 △새, 거미, 고소, 광장 등 물건이나 상황에 대한 특정 공포증 △발표나 면접 등 공적인 상황에서 오는 사회불안장애 △다양한 분야에 대해 불안 정도가 증가하는 범불안 장애 △특별한 이유 없이 재난적 상황이 나에게 곧 몰려오고 금방 죽을 것 같아 숨을 쉴 수 없을 정도가 되는 공황장애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불안장애 치료를 위해 항불안제 처방이 일반적이고 그중에서도 벤조다이아제핀 계열의 의약품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 이 물질은 1950년대 말 스위스의 다국적 제약회사 호프만 라 로슈에서 다른 물질을 만들려다가 실수로 합성해서 탄생했다. 우연히 이 물질의 강력한 진정작용이 확인돼 1960년대 최초 상용화 이래 수십종의 유사한 화학 구조를 가진 약물이 개발돼 사용되고 있다. 개발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이 계열 약물들은 여전히 많이 유통되고 있다. 미국에서만 연간 3조원가량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벤조다이아제핀 계열은 억제성 신경전달 조절 수용체인 가바(GABA)수용체의 특정 부위에 결합해 억제성 신경전달을 강화한다. 항불안, 진정, 근육이완, 과도한 호흡 억제로 이어져 급성 불안과 흥분 증상을 감소시킨다. 그러나 졸음을 유발하고 기억을 방해하는 부작용이 있다. 심한 경우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긴 것처럼 자기가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미다졸람 등 수면내시경에 사용하는 진정제 중 일부가 벤조다이아제핀 유사체다. 수면내시경 검사 중에 일어났던 일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게 이 약물 때문이다. 또한 벤조다이아제핀 계열을 장기 복용하면 살이 찌고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운동 실조’를 유발할 수 있다. 사용량이 많아질수록 내성도 강해지고 중독성도 있어 끊으면 금단 증상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들 약물 외에도 세로토닌 조절 작용이 있는 부스피론 계열의 약물이 불안 감소 효능을 지녀 많이 사용되고 있으나 공포증에는 효과가 제한적인 단점이 있다.


벤조다이아제핀 계열 약물은 알코올 혹은 아편 계열 약물과 함께 사용하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최근 다양한 마약과 의존성 약물을 투여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준 남성 배우의 경우 투약 사실이 마지막으로 밝혀진 미다졸람·알프라졸람이 바로 벤조다이아제핀 계열이다. 음주 상태에서 벤조다이아제핀 약물을 투여하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벤조다이아제핀 남용과 관련된 사망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 계열 물질은 대마초, 엘에스디(LSD), 엑스터시와 비교해도 신체적 위해성과 의존성이 더욱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기도 하다.


불안 느끼는 ‘인지적 오류’ 교정해야…인지행동 치료 ‘대안’


극심한 불안과 공포는 ‘공황’을 야기한다. 공황은 두려워서 어리둥절한 상태다. 개구리가 뱀을 만난 것처럼 몸과 마음의 정상적 작동이 멈추게 된다. 주식 시장에서 공황 상태에서의 거래(패닉 바잉과 패닉 셀링)는 막대한 손해를 끼친다. 즉각적, 직접적 위협이 되지 않는 외부 자극에 대한 불안·공포의 해소는 결국 그 대상이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음을 깨달을 때 시작된다.


벤조다이아제핀 효과에 한계가 있으며 다양한 부작용이 있음이 분명해진 뒤 벤조다이아제핀 의약품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인지행동 치료와 전자기적 신경활성조절술을 활용해 불안장애를 치유하려는 시도가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인지행동 치료는 불안과 공포를 일으키는 상황과 사건·물건 등에 대한 인지적 오류를 바르게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건에 직간접으로 노출돼도 실제로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음을 반복적으로 확인·학습해 해로운 불안과 공포 반응을 일으키지 않게 훈련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노출은 상상, 가상현실, 연극 등을 통해 처음에는 약하게 제시했다가 나중에는 강도를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뭉크가 <절규>와 <불안>을 그리고 약 20년 뒤에 내놓은 <태양>은 희망으로 가득 찬 강렬한 색채를 자랑한다. 6년 뒤 뭉크는 <스페인 독감에 걸린 나>라는 자화상에서 죽음과 마주친 상황에서도 편안함을 나타내는 부드러운 노란색으로 캔버스를 채웠다. 20세기 초반 유럽을 강타한 팬데믹을 이겨낸 뭉크는 ‘스페인 독감 자화상’을 그린 시점에서 25년을 더 살고 81살에 편안히 눈을 감았다.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신찬영 교수


당신과 내 마음이 다름을 인정하는 정신약리학자. 뇌 발달장애 기초연구 개척자로 뇌질환 동물모델, 기전 연구와 관련해 190여편의 논문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