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편해야 마음도 편안…‘장 기능 - 뇌’ 상호 작용 가설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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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영의 생각을 부르는 뇌과학>속 편해야 마음도 편안…‘장 기능 - 뇌’ 상호 작용 가설 잇따라
2020-06-24
장내 미생물, 뇌 발달에 영향, 뇌질환 치료제 가능성 제시도
관련 연구결과 수천여편 나와, 입증은 아직… 단순화 주의를
과도한 스트레스에서 해방돼 마음이 괴롭지 않고 평안할 때 우리는 종종 속이 편하다는 말을 쓴다. 속이 편하다는 뜻은 글자 그대로 소화가 잘되고 장관의 기능과 상태가 좋은 것을 말함과 동시에, 걱정이나 불안 없이 두 발 뻗고 잘 잘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니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신 건강과 장 건강이 서로 얽혀 있음을 체험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어릴 적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도 씹어 먹는 구수한 맛의 정장제를 항상 챙겨 주시려 했다.
장과 뇌가 직접 혹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연결돼 상호 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설이 장-뇌축(Gut-Brain axis) 가설이다. 즉, 뇌는 장의 기능에 영향을 미치고 다시 장의 기능은 뇌의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이다. 장관신경계는 원래 음식이 들어오면 자율적으로 위와 장 운동을 활발하게 해 음식을 소화시키고 배설을 원활하게 하는 자동적 기능을 지니고 있어 심한 스트레스 상황이나 뇌의 내분비계 조절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가 아니면 뇌가 장관의 기능에 크게 직접적이고 강력한 역할을 미치지는 않지만, 최근 반대로 장의 기능이 다양한 신경계 기능과 질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때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장내미생물로, 장 속에는 대략 우리 몸 모든 세포 수의 10여 배에 해당하는 효모, 세균, 진균, 바이러스, 원충을 포함한 100조 마리 이상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 이들은 음식물의 소화를 돕고 장 건강을 유지하는 역할뿐 아니라 우리가 먹는 약의 체내 동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심지어는 뇌의 발달과 감정 상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들이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과도한 항생제 치료에 의한 장내미생물군의 변동은 불안장애나 우울증 등의 정서장애, 알츠하이머 등의 퇴행성 뇌질환 등을 일으키고 임신 중 장내미생물 불균형이 자폐증이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같은 발달장애 유사 증상을 유발할 가능성이 발표된 바도 있다. 정서장애나 발달장애를 지니는 사람의 장내미생물군을 무균 생쥐에 주입하면 쥐가 이상행동을 보이고 행동이상을 나타내는 실험 쥐에 정상인의 장내미생물군을 주입하면 증상을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는 등 이 분야 연구는 일반인과 학자 모두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심지어 최근 연구들은 특정한 한두 종류의 장내미생물만을 주입할 때도 증상 치료 효과가 나타남을 주장해 뇌질환 치료제로 개발 가능함이 제시되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Lactobacillus (L.) reuteri라는 특정 유산균을 자폐증을 나타내는 쥐에 주입했을 때 증상 개선과 함께 복측피개영역이라는 뇌 부위의 시냅스 가소성이 회복됐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이러한 효과는 미주신경 활성과 뇌에서의 옥시토신 신호전달 정상화에 기인함이 제시돼 비상한 관심을 끈 적도 있다.
이미 3000편이 넘게 발표된 이 분야 연구 논문은 바야흐로 다양한 뇌질환에 장내미생물이 궁극의 해결책인 듯한 기대를 품게 하지만 과도한 단순화와 과장은 주의해야 한다. 영국의 리처드 한센 교수팀, 캐나다 앨버타대의 젠스 월터 교수팀 등은 뇌 건강과 장내미생물의 관련성에 관한 다양한 연구 논문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아직 많은 연구가 장내미생물 변동이 실제 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지, 아니면 그저 질환과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인지에 대한 명확한 분리 증명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으며 잘못된 연구 결과를 도출하지 않도록 보다 엄격하고 충실한 연구 디자인이 필요함을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이 분야에도 누가 좋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가 한쪽 얘기만 하려는 태도가 없지 않은 듯하다.
불안하고 우울하고 조바심 나고 때론 화가 나는 요즘이다. 자주 가던 기사식당에서 친한 동료들과 함께 돼지불백 점심을 한 후에 사람 좋게 생긴 주인장이 후식으로 전해주던 요구르트를 받아먹을 때면 왠지 소화도 잘되고 마음도 여유로워지는 것 같았다. 그런 작은 여유도 녹록지 않은 현실이다. 속 편하고 또 마음 편한 세상이 어서 왔으면 한다.
건국대학교 의대 신찬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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