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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면 치료제, 잘 못 쓰면 마약…한 끗 차 공존은 인간 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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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305회 작성일 2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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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신찬영의 마음의 독, 마음의 약 - 대마

줄기 껍질은 삼베, 씨앗은 헴프시드
말린 잎은 대마초, 건조 진액 해시시
난치병 특효…규제도 완화되지만
중독성 때문에 의료계 우려 여전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벤저민 프랭클린의 공통점은? 미국의 대통령이자 대마를 재배한 농장주다(이들이 대마초를 흡연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 빌 클린턴,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의 공통점은? 젊은 시절 대마초를 사용한 경험이 있는(혹은 그랬을 것으로 의심받는) 사람들이다. 미국에서 대마초는 정신신경계에 작용하는 전체 약물 중에서 사용량 2위로 알려져 있다. 1위는? 술이다. 즉 대마는 모든 의약품을 제치고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오남용 마약류다. 미국인의 10%가 매달 대마초를 사용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아마도 대마초처럼 중독과 사회문제 야기에 대한 우려와 의약적인 용도에 대한 열정이 같이 존재하는 물질도 드물 것이다.


대마는 한해살이 식물이다. 줄기 껍질로는 삼베를 만들고, 씨앗(헴프시드)은 슈퍼푸드로 각광받으며, 속대는 건축자재로도 활용된다. 하지만 대마의 꽃과 잎·이삭을 말리면 대마초가 되고, 대마 진액을 건조하면 중독성이 더 강력한 해시시가 된다.


문턱 낮은 마약, 대마초


최근 대마의 의학적 용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대마초는 전세계 전문가들이 평가한 전체 20종의 오남용 약물 위해도 조사에서 의존성 유발은 11위, 사회적 해악은 10위에 오르는 등 위험성 우려가 여전하다. 많은 나라가 규제도 완화하고 있지만 대마초의 지속적 사용은 더욱 위험성이 큰 마약류 사용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중보건 쪽의 우려는 커진다. 대마초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수술 후 통증이 심하고 구역질과 구토 증상이 더 많아 심장마비·부정맥 등 심혈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 미국 마취통증의학회는 올해 발표한 가이드라인에서 모든 수술 환자들에게 대마초 사용 여부를 확인해 심한 경우 수술을 연기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1964년 이스라엘의 라파엘 메슐람 박사 등은 대마가 함유한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이 도취감·환각성 등 정신 활성의 변동을 유도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대마에는 티에이치시와 유사한 구조를 지니는 수십 종의 물질이 있으며 이를 ‘칸나비노이드’라 부른다. 이후의 연구를 통해 티에이치시 등의 칸나비노이드는 생체에서 시비(CB)1, 시비(CB)2 등의 칸나비노이드 수용체에 결합해 진통, 운동 감소, 음식 섭취 행동 조절, 저체온증, 기억력 감소 등의 다양한 생리 작용을 조절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 몸에 내재성 모르핀이 있는 것처럼 내재성 칸나비노이드(아라키도닐글리세롤·아난다마이드)도 존재하며, 이들 물질은 정상 상황에서 정신 기능과 생리 기능을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주요 제약회사와 미국·이스라엘의 대학연구소에서는 티에이치시와 같이 시비1, 시비2 수용체의 기능을 증진·억제하는 물질이나 내재성 칸나비노이드의 합성과 분해를 조절하는 물질을 생산해 의약품 용도로 개발 중이다. 이런 물질은 암과 에이즈 환자의 식욕 조절과 오심·구토 조절, 신경병증 통증을 비롯한 진통제, 비만 치료제, 정신질환 치료제 등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합성 칸나비노이드는 마약으로 오용될 위험이 있다. 미국의 존 윌리엄 허프먼 박사와 알렉산드로스 마크리야니스 박사는 자기 이름을 붙인 수백종의 새로운 칸나비노이드를 합성해 연구와 의약품 개발에 활용하도록 했는데, 이 중 일부는 마약류로 지정돼 각국 정부의 규제를 받고 있다. 허프먼 박사는 만년에 합성 칸나비노이드 중독 관련 위험성을 알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천사와 악마 ‘한 끗 차이 공존’


티에이치시와 같은 강력한 마약류 작용은 없으면서 난치성 뇌전증 치료에 효능을 지닌 대마 유래 물질 칸나비디올(CBD)도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대마에서 시비디를 추출해 이를 주성분으로 한 천연물 유래 의약품이 처방약으로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아 시판되고 있으며, 활발한 기전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최근 뇌신경과학 분야의 권위지 중 하나인 <뉴런>에는 시비디가 경련과 관련된 과도한 흥분성 신경의 활성은 감소시키고 억제성 신경의 활성은 증가시켜 ‘과흥분의 지속적 증가’라는 악성 고리를 끊어 뇌전증 치료 효과를 보인다고 보고했다. 이런 과흥분성 억제가 자폐증, 불안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을 포함한 다양한 정신과적 치료에 활용될 수 있을지 추가 연구가 진행 중이다.


올해 3월 초 ‘대마 연구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이스라엘의 메슐람 박사가 92살을 일기로 사망했다. 작년에 유명을 달리한 허프먼 박사와 함께 대마 연구의 1세대가 저물어간다. 대마의 중독과 의존성을 방지하고 의학적 용도로 더 빨리 실용화에 성공했다면 메슐람 박사 등은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을 것이다.


대마는 신석기 시대부터 인간이 오랫동안 길러온 작물로 옷과 섬유, 다양한 산업 소재로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 대마에는 티에이치시 마약류 성분과 시비디 같은 의약 용도로 개발이 가능한 성분이 동시에 존재한다. 대마의 두 얼굴이다. 프랑스의 코미디 영화 <폴레트의 수상한 베이커리>에는 망해가는 동네 빵집을 운영하는 괴팍한 할머니가 대마초를 넣은 빵을 팔아 대박을 치고, 또 그로 인해 마약 조직과 얽혀 곤경에 빠지며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그려진다. 천사와 악마는 한 끗 차이고,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지 모르겠다. 자연이 준 선물을 제대로 또 바르게 활용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신찬영 교수

당신과 내 마음이 다름을 인정하는 정신약리학자. 뇌 발달장애 기초연구 개척자로 뇌질환 동물모델, 기전 연구와 관련해 190여편의 논문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