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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치료제가 ‘공부 잘하는 약’으로 둔갑한 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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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290회 작성일 23-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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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신찬영의 마음의 독, 마음의 약 - 각성제

미국 중고교에 퍼져 있는 각성제
한국선 수능 앞두고 처방 늘어
‘공부 잘된다’ 느낌은 위약 효과
청소년기 뇌 발달에 악영향


최근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생들에게 ‘집중력 강화 효과가 있다’며 필로폰이 든 음료를 마시게 하고 부모와 학생의 정보를 알아내 협박하려 한 신종 범죄가 적발돼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범인들이 이 음료에 붙인 이름은 ‘메가 ADHD(에이디에이치디)’였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로 쓰는 각성제를 ‘공부 잘하는 약’으로 오남용하고 있는 세태가 이런 사악한 범죄의 빌미를 준 건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다. 각성제는 집중력 저해, 과잉행동, 충동성을 통제하기 위해 의사가 정확한 용법·용량을 처방해야 하는 향정신성의약품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집중을 도와 성적을 올리는 약”으로 둔갑하여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청소년의 각성제 오남용은 전세계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미시간대학의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자마 네트워크 오픈>에 미국 중고등학생의 각성제 오남용 실태를 발표했다. 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NIDA)가 시행하는 약물 사용실태 조사(2005~2020년)를 토대로 미국 전역의 3284개 학교 23만명 학생을 조사한 결과, 학교별로 많게는 25%의 학생이 각성제를 정해진 의학용도 이외의 목적으로 복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학용도 이외 목적’이란 공부를 잘하기 위해, 잠을 깨기 위해, 환각을 얻기 위해 사용한 것을 가리킨다. 우리나라도 수능 한달 전부터 에이디에이치디 치료용 각성제의 처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수능이 끝나면 다시 줄어드는 양태를 보인다. 수능 고득점을 위해 부모가 각성제 처방을 받아 아이에게 건네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운 정황이다.


각성제 먹으면 성적 오른다고?


각성제는 정말 기억력과 학업 성취도를 증가시킬까? 각성제는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 분비로 감정 처리와 각성·수면을 조절하는 구실을 한다. 도파민·노르에피네프린 신경 활성이 저하된 에이디에이치디 경우에는 각성제가 치료적 효능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아무 문제가 없는 청소년에게 각성제를 지속적으로 투여하면 뇌 발달에도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치고 뇌 기능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도파민의 급격한 증가는 의존성 마약류 물질의 공통적인 작용기전이기도 하다.


성인이 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각성제 복용이 성적 향상에 영향이 있는지 조사한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메릴랜드대 공중보건학과 연구진이 2017년 발표한 이 연구의 결론은 “성적을 올리지 못한다”이다. 독서 및 유창함에는 아무 영향이 없고 작동기억은 오히려 저해한다는 보고도 있다. 각성제가 처음 해보는 일에는 집중도를 높여줄 수 있지만 흔히 해오던 과제에는 오히려 충동성과 실수가 많아질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각성제가 정상인에게는 오히려 흥분 상황을 유도해 실수가 많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기전이 다르긴 하지만 대표적 각성제의 하나인 카페인도 어린이에겐 위험할 수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지원을 받아 싱가포르대학 연구진이 2020년 발표한 논문을 보면, 어린이가 ‘함유 음료’ 형태로 카페인을 다량 섭취한 경우 읽기, 이해, 작동기억, 일화성 기억, 창의성을 포함한 모든 인지 기능 영역에서 낮은 점수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각성제의 기본 약리 작용은 졸음을 쫓는 것이라 깨어 있는 상황만으로 인지 기능이 증가했다고 믿게 될 가능성이 크다. 흥미롭게도 각성제 사용자들은 각성제 사용과 그 기대감으로 자신들의 인지 기능이 더 향상됐다고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플라세보(속임약·위약) 효과가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각성제도 ‘약물’…의존성 위험


효과가 별로 없는 것 외에도 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각성제의 기본 부작용은 수면 저해, 식욕 부진, 체중 감소, 두통, 심장박동 증가, 혈압 증가 등이다. 또 장기간 과량 복용에 의해 약물의존성을 유발할 수 있으며 술과 기타 마약류 물질의 의존성 증가와도 연관성이 있다. 특히 청소년기의 약물의존성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어질 수 있다. 에이디에이치디 치료제를 남용했을 경우 음주 문제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발달 신경학 분야의 중요 연구 성과 중 하나는 인간의 두뇌가 청소년기에 외형적 성장을 끝낸 이후에도 발달을 계속한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두뇌의 크기는 청소년기에 완성되지만 이후 시냅스 가지치기가 이어지며 섬세한 뇌기능 조절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뇌 발달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우울증·조현병·불안장애·강박증을 비롯한 다양한 기능 이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뇌의 발달은 엄마 뱃속에서 만들어진 기초공사 터전 위에 영유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고층 아파트 외벽을 완성하고 청소년기 이후로 마감 공사와 내장 공사가 이뤄지는 과정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아파트 공기를 단축하겠다며 날림 마감을 하면 물이 새고 곰팡이가 슬 수 있다. 청소년기 각성제 복용도 마찬가지다.


시험 점수 더 얻겠다고 아이에게 각성제를 먹이는 행태는 매우 위험하다. 임신 중 음주는 태아의 뇌 발달에 치명적인 결과를 유발할 수 있다. 태아에게 안전한 음주량이 있을까. 임신 중 한두잔이라도 술을 마시면 적은 확률이긴 하지만 태아의 기형과 뇌 기능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 태아에게 ‘안전한 음주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미 확인된 것이다. 각성제 사용에 ‘안전한 복용량이나 사용 기간’이 있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하지만 각성제는 에이디에이치디 증상에 사용하는 ‘약물’이다. 아무 문제가 없는 청소년이 ‘약물’을 복용하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 배탈처럼 그냥 지나가는 일이 아니라 뇌 발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약물을 복용했다가 나락으로 떨어진 스포츠 스타들이 많다.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당장의 고득점이 아니라 건강한 성장이다.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신찬영 교수

당신과 내 마음이 다름을 인정하는 정신약리학자. 뇌 발달장애 기초연구 개척자로 뇌질환 동물모델, 기전 연구와 관련해 190여편의 논문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