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고통없는 삶 사이…‘헤어질 결심’ 서래가 택한 것
페이지 정보
본문
죽을 것 같은 고통 잊게 하지만
모르핀 100배 이르는 강한 작용
‘오남용 사망’ 사회 문제 되기도
중독성 없앤 치료제 개발에 박차
“원하던 방식으로 보내드렸어요. 펜타닐 캡슐 4개면 되죠. 나도 4개를 챙겼고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에스엔에스(SNS)에서 2022년의 가장 좋았던 영화의 하나로 꼽은 <헤어질 결심>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여주인공 서래(탕웨이)는 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가 존엄사를 요구하자, ‘결심’을 실행하기 위해 펜타닐을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희망 없던 자신의 삶 마지막 순간을 위해 어머니 유골함 밑에 또 다른 펜타닐 캡슐 4개를 붙인다.
누구나 마음의 괴로움과 몸이 다치거나 아파서 겪는 아픔, 즉 고통 없는 삶을 원한다. 마음의 아픔이야 고차원적인 뇌 기능을 지니는 인간이기 때문에 겪어야 할 어쩔 수 없는 세금으로 여긴다 쳐도 끔찍한 육체적 고통은 도대체 생존에 대한 어떤 진화적 장점이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출산, 말기 암, 큰 사고, 화상 및 신경이나 뇌 손상에 의한 극심한 통증은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곁에서 보기에도 눈물겹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인류는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 양귀비와 그로부터 얻어진 아편을 강력한 진통제로 활용해 왔다. 물론 ‘아편중독’이라는 심각한 문제와 함께였기는 하지만. 버드나무 껍질의 진통작용으로부터 아스피린이 합성되었듯이 1805년 독일에서 아편의 약리 작용을 매개하는 물질이 발견되고 이는 통증을 잊게 하고 꿈을 꾸듯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게 해준다는 의미에서 그리스 신화의 꿈의 신 모르페우스에서 이름을 딴 ‘모르핀’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모르핀의 상업적 성공은 세계 최장수 글로벌 제약회사인 ‘머크’의 모태가 되었다.
통증을 잊을 수 있게 해준 대가는 컸다.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성 진통제)는 미국 청장년층의 주요 사망 원인이다. 오피오이드 오남용 문제는 영화 <레퀴엠>, <더 라스트 나르크>, <죽음의 진통제> 등 여러 다큐멘터리에서 다루고 있으며, 앞서 말한 우리 영화 <헤어질 결심>에도 주인공이 펜타닐을 지닌다는 설정이 나온다. 마약성 진통제로 사용되던 옥시코돈이라는 물질의 오남용으로 인한 폐해가 너무나 극심하여 ‘옥시코돈 유행병’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이를 펜타닐이라는 약물이 이어받은 듯하다.
펜타닐은 모르핀의 100배, 헤로인의 50배가량의 강력한 작용을 지니는 물질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오피오이드성 진통제이다. 올해 미국 마약단속국은 미국 전국민을 사망에 이르게 할 만큼의 펜타닐을 압수했다고 밝혀 충격을 준 바 있다. 문제의 근본은 용량을 지키지 않고 과량 복용을 하거나 오용, 마약성 진통제가 필요 없는 사람의 남용 등이다. 미국에선 마약성 진통제를 과도하게 처방해 중독 문제를 야기하는 의사를 일컫는 ‘알약 공장’(Pill Mill)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오피오이드 계열의 물질은 기본적으로 강력한 진통작용과 기침을 멎게 하는 작용을 하며, 과도한 장관 운동을 억제해 설사를 멎게 한다. 따라서 진통제, 진해제, 지사제로 쓸 수 있다. 이와 함께 중추신경계에서 불안 감소, 행복감과 도취감 유발 등의 효과를 낳으며 중독과 의존성을 매개한다.
영화나 소설에서 아편을 피운 사람들이 잠을 자는 것처럼 주위에 무감각해지고 늘어져 있는 모습을 묘사한 장면은 이러한 작용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아편계 물질은 호흡을 억제하고, 연수의 구토 중추를 자극하여 구역질과 구토를 유발하며 히스타민을 유리시켜 모기에게 물리고 알레르기에 걸렸을 때처럼 가려움증을 유발한다. 가장 큰 문제는 호흡 억제 기능으로 과량을 섭취하게 되면 호흡마비를 통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아편계 물질은 내성과 의존성을 지닌다. 즉, 같은 정도의 진통 효과와 도취감을 얻기 위해서는 점점 많은 양의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해야만 한다. 반면에 장관 운동을 억제하는 기능, 경련 유발, 눈동자 축소, 심장 억제 등의 효과는 내성이 상대적으로 작아 진통제 용량의 증가에 따라 극심한 변비, 가려움증으로 인한 피부 및 조직 손상 등의 증상이 생긴다. 이 계열의 물질들은 매우 강력한 의존성을 지니므로 단기간의 투약으로도 중독에 이르는 경우가 흔하며 내성에 따라 투여량이 점점 증가하게 된다.
중독이 된 뒤 약물을 끊었을 경우 금단 증상이 매우 심하게 나타난다. 금단 증상은 오피오이드계 물질의 작용이 반대로 나타난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만히 있어도 통증을 느끼고 불안, 불면증, 공격성을 보이고 공포감과 적대감을 나타낸다. 호흡이 가빠지고 혈압이 오르며 눈동자는 커지고 극심한 설사를 경험하게 된다. 헤로인 등의 오피오이드계 물질은 모든 의존성 유발 물질 중에서도 정신적, 육제적 의존성 및 손상과 사회에 미치는 해악이 가장 큰 물질로 꼽히고 있다.
마약성 진통제 문제 해결에는 마약류 및 의약품 처방 관리와 중독 조절 등의 행정적, 사법적, 사회적 규제와 도움이 절실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과학적 접근이 중요하다. 휴스턴대학의 연구자들은 펜타닐 백신을 통해 항체와 펜타닐이 결합하고 두뇌에 들어갈 수 없게 함으로서 펜타닐의 도취감 유발을 억제하여 중독을 조절하는 방법을 제시한 바 있다. 전통적인 약물 요법에 의한 중독 및 금단 증상 완화 외에도 디지털 치료제를 활용한 중독 치료법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아 시판되고 있다.
중추성, 심인성 진통 조절에 중요한 뇌 부위의 전자기적 자극에 의한 통증 조절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에 있다. 2017년 미국 스크립스연구소의 연구자들은 뮤 수용체라는 단백질에 펜타닐이 결합하면 호흡마비 부작용이 크게 나타나지만, 같은 수용체가 지(G) 단백 신호만 활성화하면 진통작용은 큰 대신 호흡마비 부작용이 적게 나타난다고 <셀>(Cell)지에 보고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좀 더 선택적인 진통작용을 지니며 호흡마비 부작용은 적은 오피오이드성 진통제가 2020년 미국 식품의약국의 허가를 받은 바 있다. 비슷한 선택적 신호전달 연구를 통해 도취감 유도가 적으면서 진통작용은 우수한 치료제 개발 연구도 진행 중이며, 오피오이드 수용체 외에 몇몇 이온통로 단백질 및 수용체를 이용한 비마약성의 강력하고 지속성인 진통제 개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적어도 과학계를 중심으로 통증의 조절은 아편의 중독성에서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다. 통증과의 싸움에서 결국 승리해 펜타닐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날을 기대한다.
연재[한겨레S] 신찬영의 마음의 독 마음의 약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관련링크
- 이전글뉴로벤티, ‘바이오코리아 2023’ 통해 국내외 제약 바이오기업과 파트너링 강화 23.05.15
- 다음글우울증 슈퍼 치료제와 ‘클럽 약물’ 오명 사이…‘케타민’ 미래는? 22.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