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슈퍼 치료제와 ‘클럽 약물’ 오명 사이…‘케타민’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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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타민은 ‘임사체험’ 등 부작용 논란이 있지만, 난치 우울증 치료에 효과가 뛰어난 의약품이다. 잠금장치가 있는 캐비닛에 병째로 보관된다. AP 연합뉴스
케타민
마취제에서 난치병 치료 약으로
기존 약 듣지 않던 환자에 특효
환각 효과로 ‘클럽 약물’ 오해에
임사체험 논란 등 부작용 우려도
대화의 단절로 홀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관심을 가지고 돕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고 이어령 전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는 운동회 날 복잡한 운동장에서 텅 빈 교실을 바라보는 것 같은 일상에서 나타나는 침묵이 “죽음을 체험하는 일”이라 이야기한 바 있다. 텅 빈 교실에 너무 혼자 오래 두면 안 된다. 손을 잡고 나와야 한다.
세계적으로 치료제만 36종 이상이 나와 있고 주변에 약을 복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 우울증은 약만 잘 먹으면 치료 혹은 조절이 가능한 ‘마음의 감기’로 알고 있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체 우울증 환자 중 30% 정도는 두 가지 이상의 약제를 장기간 복용해도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를 난치성(치료불응성) 우울증이라고 한다. 약이 듣지 않고 자살 충동이 우려되는 환자들에게는 전기경련 요법이 권장되기도 하는데 환자를 마취하고 뇌에 강한 전기 자극을 주어 경련을 유도하는 것이다. 치료효과가 증명된 방법이지만 어쩐지 약이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다른 정신과 의약품과 마찬가지로 우울증 치료제도 약이 먼저 나오고 이를 연구하여 우울증의 치료 기전을 거꾸로 이해하게 된 경우에 해당한다. 1950년대 결핵약을 사용하다가 이 물질들이 우울증 치료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된 이래로 다양한 우울증 치료제는 몇몇 신경전달물질, 이를테면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및 도파민의 양을 뇌 내부에서 많게 해주는 약으로 귀결되어 왔다. 따라서 난치성 우울증은 이들 세 가지 신경전달물질과의 관련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우울증 타입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정확히 어떠한 기전으로 난치성 우울증이 발생하는지는 최근까지도 여전한 미스터리의 하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혜성과 같이 등장한 물질이 케타민이라는 오래된 마취제이다. 1960년대 초기에 개발된 이 약물은 호흡부전 등이 적어 비교적 안전한 마취제가 필요한 베트남전쟁 등을 계기로 많이 사용된 바 있다. 그저 그런 오래된 약 케타민은 난치성 우울증에 대한 치료 효과 확인을 통해 정신신경과 분야에서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다. 2000년 미국 예일대학의 로버트 버먼, 존 크리스털 등 연구자들은 마취작용을 나타내는 농도보다 훨씬 적은 농도의 케타민을 우울증 환자에게 투여한 결과 신속하고 강력한 항우울 효과를 나타냄을 확인했다. 지난 20여년 동안의 연구를 통해 케타민은 최근 반세기 내에 가장 획기적인 우울증 치료의 변혁을 가져온 약물로 평가받고 있다. 기존에 사용되던 약물은 적어도 2주 이상을 투여해야 우울증을 개선하는 데 비해 케타민은 빠른 경우 2시간 이후부터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보고가 있으며 한번 투여에 의해 적어도 몇 주간 효과를 나타낸다고 알려져 있다.
케타민은 특히 기존 치료에 반응이 적었던 환자에게서 더 우수한 효과를 나타난 걸로 보고되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정신건강연구소 소장이었던 토머스 인셀 박사는 케타민의 이런 치료 특징에 대해 극찬을 보낸 바 있으며,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19년, 우리나라는 2020년에 케타민의 거울이성질체(거울에 비춘 것처럼 구조가 닮았지만 성질이 다른 물질) 중 에스케타민을 우울증 치료제로 허가하여 난치성 우울증 치료에 활용하고 있다. 케타민의 우울증 치료 효과 연구를 통해 흥분성 및 억제성 신경전달의 조절이 우울증 증상 발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게 되었다. 우울증의 신경생물학적 근원은 유전적, 환경적 원인에 의한 시냅스 가소성 이상 및 두뇌 부위 간 신경연결성 저하 때문에 발생한다는 가설이 최근에는 더욱 힘을 얻게 되어 이를 바탕으로 한 난치성 우울증 치료제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
모든 약은 독이다. 그리고 모든 독은 약이다. 용량에 따라서, 개인이 가진 유전적 배경과 그때의 상태에 따라서 독이 약이 되고 약이 독이 된다. 진화가 마련한 가장 아름답고 정교한 산물인 인간 두뇌에 대해 작용하는 약물들은 더욱더 그렇다.
마취제로서의 케타민은 투여 후 주변과 자신의 몸과 자아에서 분리되어 사지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는 느낌을 갖게 하는 등 해리성 마취제로 분류되며 환각을 유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성질을 악용하여 케타민은 소위 말하는 ‘클럽 약물’로 오남용되고 있기도 하다. 최근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어 언론에 자주 보도되기도 한다. 중독과 환각, 정신해리 작용에 대한 우려 등으로 우울증 치료용 케타민도 병원에 당일 입원한 상태에서 사용되어야 하며 반복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등 원래 생각했던 만큼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케타민의 특징적 부작용에는 악몽이 있다. 영국 연구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케타민 투여에 의해 유쾌하지 않은 꿈을 꾸는 일이 3배가량 많아진다. 케타민은 ‘임사체험’을 유발한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임사체험이란 거의 죽을 뻔한 상황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느꼈다고 주장하는 증상으로, 공중에 떠서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느낌, 평화롭고 행복한 느낌, 인생을 스냅숏으로 회상하기, 긴 빛의 터널을 여행하는 느낌, 밝고 화려한 빛을 본 느낌 등이 대표적이다. 벨기에, 미국, 아르헨티나, 프랑스 공동 연구팀은 1만5천건 이상의 임사체험에 대한 묘사 자체와 정신신경계 작용약물, 마약, 마취제, 의존성 약물 등에 의해 나타나는 정신 증상의 분석을 통해 케타민이 가장 흔하게 임사체험과 유사한 현상을 유발하는 물질이라고 보고했다. 죽음 직전에 뇌에서 케타민과 유사한 물질이 유리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이 있기도 하다. 케타민이 우리에게 악몽을 유발할 것인가 아니면 거의 죽음에 이를 정도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밝은 빛으로 이끌어 새로운 희망을 안겨줄 것인가. 이는 전적으로 케타민을 어떻게 사용하고 활용할 것인가와 부작용이 덜한 약물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에 달려 있다. 선택은 우리 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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