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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까지 주저앉는 ‘코카인 코’…끔찍한 마약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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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306회 작성일 23-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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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신찬영의 마음의 독, 마음의 약
코카인


여러분이 영화 속 공장주나 농장주라고 가정하자. 당신에게 농장 노동자들의 생산성은 항상 아쉽다. 어느 날 누군가 찾아와 당신의 고민을 해결해줄 환상적인 약이 있단다. 일 많이 해도 피곤을 안 느끼고, 잠도 별로 안 자고, 집중해서 일하고, 밥 많이 안 줘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단다. ‘양심과 이성’을 지닌 당신이라면 의심하고 돌려보내거나 부작용을 묻겠지만, ‘악덕 버전’의 당신은 냉큼 사서 노동자들에게 피로회복제라고 몰래 먹이고는 노동력의 한 방울까지 짜낼 것이다.


무슨 약물일까? 정답은 코카인 혹은 암페타민 아니면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이다. 커피를 떠올렸을 수 있지만, 커피의 각성 및 흥분 작용은 코카인 등의 각성 작용과는 기전이 다르고, 화장실도 자주(!) 가야 한다. 코카인은 각성제의 대표 약물 중 하나다. 의학적 용도는 적고, 중독과 의존성 및 사회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마약으로 분류하여 관리하고 있다. 미국에서만 150만명 이상의 코카인 사용자가 있으며 한해 50만명 이상이 코카인 때문에 응급실을 방문한다고 한다. 생쥐와 흰쥐 및 원숭이를 포함한 거의 모든 동물종과 사람에게서 코카인은 쉽게 중독과 의존성을 유발한다.


각성제 아닌 최악의 마약류


각성(覺醒)이란, 깨달아 알고 깨어나 정신을 차리는 것으로 안 보이던 것을 볼 수 있게 되는 부처의 경지에 이르는 완전한 인식(覺), 그리고 술 잔뜩 마셔 비몽사몽이 되어 있다가 새벽이 오고 닭이 울면 깨어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것(醒)을 의미한다.


초기에 각성제란 이름을 붙인 한국과 일본의 학자들은 이 물질들이 사람과 동물을 잠에서 깨어 있게 하고 집중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면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름을 붙인 것이 틀림없다. 서구권에서는 흥분제(Stimulant) 혹은 정신운동 흥분제라는 말을 쓴다. 각성제라는, 듣기에 따라 엄청 좋아 보일 수 있는 말은 쓰지 않는다. 지나친 흥분은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좋지 않음을 코카인 같은 마약이 아니더라도 양식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다른 대부분의 각성제와 마찬가지로 코카인은 모노아민 신경전달물질, 특히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 그리고 세로토닌의 시냅스상의 농도를 증가시키며 각성, 집중, 사교성 증가, 행복과 도취감, 감정 고조 등을 유도한다. 흥분과 도취감 및 탐닉 작용뿐 아니라 도파민에 대한 작용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유사한 작용을 지니는 수많은 의약품 중에 왜 코카인이 좀 더 강력한 작용을 하는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


사용이 반복되고 용량이 증가하면 조급증, 불안감, 폭력성, 불면증, 사고장애, 망상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과도한 수면, 권태, 피로감, 렘(REM·급속안구운동)수면 증가, 다식증을 유도할 수 있다. 코카인은 금단 증상이 매우 심해 육체적, 정신적 의존성은 모든 마약류 중 2위, 사회에 미치는 해악은 3위로 평가된다. 1위는 헤로인이다. 코카인은 교감신경을 강력히 흥분시켜 다양한 심혈관계 부작용을 일으킨다. 혈관 수축이 어찌나 강한지 빠른 환각 효과를 위해 코카인을 코로 흡입하는 중독자들은 비중격의 혈관 수축으로 혈액 공급이 안 되고 조직이 괴사하여 염증이 일어나 심하면 코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코카인 코’라고 불리는 부작용을 겪게 된다.


금단 증상과 응급 증상에 대한 대증요법적 처리 외에 코카인 중독을 고치는 좋은 치료제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부터 코카인에 대한 백신을 개발하고자 하였으나 마약 의존성 예방의 윤리적 문제 외에도 코카인에 대한 항체가 혈중 코카인 농도를 낮춰 오히려 더 많은 양의 코카인을 사용했다는 보고도 있는 등 아직 갈 길이 멀다. 코카인 사용 때 몸에서 ‘코카인 및 암페타민 조절 펩타이드’(CARTPT)라는 유전자 발현이 증가하는데 이 유전자는 코카인과 유사한 내재성 각성제로 연구되고 있다. 스트레스 반응, 보상작용, 식욕 조절, 물 섭취 조절, 신경병증 통증의 조절에 관여하며 신기하게도 이 물질은 코카인과 동시 투여할 경우에는 오히려 코카인의 작용을 억제한다는 보고도 있어 이를 활용한 각성제 남용 조절 연구가 큰 기대를 받고 있다.


코카인에 의한 도취감과 유혹이 얼마나 큰 것일까? 사람들에게 일반 코카인과 2달러가량의 현금 중 선택을 하게 하면 2달러 현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중독성이 강한 흡연용 ‘크랙 코카인’과 5달러를 선택하게 하면 크랙 코카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코카인 중독 조절을 위해 처벌과 재활 외에 정상적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보상과 돌봄을 제공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많은 힘을 얻고 있다.


사람 인생 망치는 세가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주연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주가 조작 등으로 수억달러를 사기 치다 미국 연방수사국(에프비아이·FBI)에 의해 구속된 조던 벨포트라는 사람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블랙코미디 영화이다.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돈, 섹스, 마약의 3종 세트가 범벅이 된 수위가 매우 높은 영화로 극 중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코카인을 달고 산다. 진정제 타입의 마약에 취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몸과 정신이 엉망이 된 상태에서 에프비아이를 피하기 위해 정신을 차려 각성하고 위기 탈출을 한답시고 코카인을 마구 흡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정신없는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커피 한잔이야 좋겠지만 정신의 고귀함 대신 마약을 기웃거리는 순간 각성이 아닌 과도한 흥분과 미몽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약에 취해 죽을 때까지 코카인 레버를 누르는 생쥐 꼴이 되지 않으려면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약장수들이 흥분제, 각성제 혹은 마약을 팔고 있는 건 아닌지 구분할 필요가 절실하다.


코카인을 싣고 가던 마약상이 비행기 사고로 하늘에서 떨어뜨린 코카인을 주워 먹고 폭주하는 미국흑곰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코카인 베어>라는 미국의 블랙코미디, 생존 스릴러 영화가 최근 개봉했다. 코카인에 취한 이 미국흑곰은 영화에서와 달리 실제로는 뛰어다니지조차 못했다. 코카인을 잔뜩 먹고 죽은 채 숲에서 발견된 흑곰은 켄터키의 한 기념품점에 박제되어 볼거리로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당신과 내 마음이 다름을 인정하는 정신약리학자. 뇌 발달장애 기초연구 개척자로 뇌질환 동물모델, 기전 연구와 관련해 190여편의 논문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