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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폭풍우’ 잠재운 조현병 치료제, 원래는 감기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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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22회 작성일 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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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신찬영의 마음의 독, 마음의 약 클로르프로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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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조현병을 앓았던 빈센트 반고흐가 비극적인 자살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더 많은 <해바라기>, <아몬드 나무>와 <별이 빛나는 밤>을 볼 수 있었을까?

조현병 환자의 뇌와 마음에는 격렬한 폭풍우가 휘몰아친다. 환각과 환청이 나타나고 피해망상과 과대망상 등에 빠지는 경우도 흔하며, 때로는 뒤죽박죽 섞인 인지기능, 비이성적 말과 행동, 감정적 격앙과 폭력적 행위로 이어지기도 한다. 조현병 환자의 뇌와 마음에는 한여름의 숨 막히는, 바람 한 점 없는 침묵이 이어지기도 한다. 마른나무처럼 아무 감정이 없는 사람이 되어 주변에 반응하지 않고 무표정, 무감각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현대 과학의 눈부신 발전을 보아온 우리들은 불과 70~80년 전까지 조현병 등 정신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1950년대 초까지도 심한 조현병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고 구속복을 사용하여 꽁꽁 묶어두거나, 환자의 전전두엽 일부를 드릴을 사용하여 손상시켜 환각, 망상, 격앙 등의 증세를 완화시킬 수 있다며 전전두엽절개술을 발전시키기도 했다. 지금은 끔찍하고 비인간적 수술로 여겨지지만 포르투갈 의사 안토니우 에가스 모니스는 이 수술법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존 에프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누이도 이 수술을 받고 평생을 빈껍데기만 남은 것 같은 정신 상태로 살았다고 알려진다.

감기약이 만든 놀라운 효과
인간의 삶을 바꾼 많은 의약의 역사는 페니실린처럼, 뜻밖의 우연한 발견(serendipity, ‘발명’이 아니다)과 그를 활용한 추가 연구를 통해 발전해왔다. 정신병원에서 뇌를 뚫는 드릴과 인슐린을 사용한 쇼크 요법만이 존재하던 시절, 클로르프로마진은 실질적 의미에서 최초로 상용화된 조현병 치료제이다.

클로르프로마진은 원래 조현병을 치료하기 위해 만든 물질이 아니다. 프랑스의 외과의사 앙리 라보리는 1940년대 후반 비염, 알레르기, 코감기를 치료하기 위해 프랑스의 제약회사 론풀랑크에서 개발되었던 항히스타민제 프로메타진이 수술환자의 과도한 흥분과 쇼크를 억제하고, 정신적 안정과 진정 작용을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감기약을 먹으면 졸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좀더 우수한 마취 보조제(마취 칵테일) 개발을 론풀랑크에 제안했다. 이에 따라 1950년 폴 샤르팡티에는 유사한 화합물인 클로르프로마진을 합성하고 론풀랑크는 이를 마취 보조제 용도로 1952년 상용화하였다. 클로르프로마진이 직접적 수면 유도 작용 없이 우수한 흥분 억제 기능을 보이는 것에 착안해 정신병 환자들에게 그 효과를 시험한 결과, 그 전에 볼 수 없었던 탁월한 효과를 확인하여 조현병 치료제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클로르프로마진이 나온 이래로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할 조현병 환자가 크게 감소하여 탈시설화가 현실화됐다. 클로르프로마진은 나온 지 3년 만에 정신과 치료 방식을 완전히 바꾼 약물로 평가받게 되었다.

그러나 클로르프로마진의 진정한 중요성은 환자에 대한 우수한 치료 효과에 그치지 않는다. 클로르프로마진은 조현병이 일어나는 원인과 기전 연구, 후속 치료제들의 개발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약물이다. 비록 완벽한 약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한동안 클로르프로마진은 조현병 치료 효과를 평가하는 기준품으로 사용되어, 후속으로 개발된 치료제들의 치료 효과는 클로르프로마진 비교등가율(CPZE)로 표시되곤 했다.

원래는 항히스타민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합성된 물질이지만, 조현병 증상을 나타내는 동물 행동 분석 등의 연구를 통해 곧 조현병 치료 효과는 히스타민 억제 효과와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음이 분명해졌다. 노벨상 수상자인 스웨덴의 아르비드 칼손 박사 등은 신경전달물질의 분광 정량법 등의 연구 방법을 적용하여 클로르프로마진의 치료 효과는 과도한 도파민 활성을 막음으로 나타날 가능성을 보고했고, 실제로 클로르프로마진 이후에 개발된 수많은 후속 치료제들의 치료 효과는 도파민의 작용을 전달하는 도파민 수용체 중 일부인 D2 도파민 수용체를 막는 효과와 정확히 일치함이 확인되었다. 즉, 도파민 D2 수용체를 강력하게 막으면 적은 용량으로 치료 효과를 나타내며 덜 강력하게 막는 치료제는 같은 치료 효과를 얻기 위해 더 많은 용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유사한 구조를 지니는 D1 도파민 수용체에 대한 작용은 조현병 치료 효과와 전혀 관계가 없었다. 오히려 D1 도파민 수용체 억제는 파킨슨병과 비슷한 증상을 나타내는 운동기능 실조를 유발할 수 있으며, 이는 클로르프로마진을 비롯한 많은 조현병 치료제의 공통된 부작용 중 하나이다. 도파민 외에도 클로르프로마진은 아세틸콜린, 히스타민,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신경전달도 어느 정도 차단하며 이들의 차단이 어떠한 신경학적 부작용을 유발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어, 클로르프로마진은 20세기 중후반 ‘신경과학 및 신경정신약리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새로 개척하고 발전시키는 데 실로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도파민은 감정에 기반한 고위 인지기능의 조절, 행복감과 도취감의 조절, 동기 유발과 집중, 운동기능의 조절 등 다양한 뇌기능의 조절에 관여하고 있는 신경전달 물질이다.

뇌질환 조절의 출발점 된 치료제
도파민 신경전달의 과도한 활성화는 약물, 게임, 도박 등 여러 원인에 의한 중독과 의존성 유발에 원인이 되며 심한 경우 환각 증세 등 조현병 유사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과도한 단순화지만 비유를 하자면, 조현병 환자의 뇌에서는 도파민의 격랑이 제방을 넘어 들판으로 사납게 휘몰아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최근의 조현병 치료제는 세로토닌성 신경전달 조절에 대한 영향이 강조되고 있기는 하지만, 클로르프로마진으로 시작된 신경약리 연구를 통해 우리는 인간 뇌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흐름이 유지되는 방식과 혹은 뇌질환이 발생하는 이유, 그 인위적 조절법을 하나씩 깨달아 가고 있는 중이다.

형광 호박 그리고 물방울들을 좋아하시는지? 무한히 반복되는 거울의 방은? 구사마 야요이는 조현병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 화제를 일으키는 화가 중 한명이다. 1950년대부터 이어져온 그녀의 오랜 싸움 속에 클로르프로마진과 그 후예들이 정신을 휘몰아치는 폭풍우 속, 잠시 쉬어 갈 산들바람이 되어주었을 것이라 믿는다.

신찬영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